
"솔직한 제 심정을 말하면 아주 밉습니다.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8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소방관' 제작보고회에서 곽경택 감독은 그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냈다. 2020년 촬영 완료 후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묻어났다.
영화는 개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후반 작업이 한창이던 2022년 9월, 주연 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 소식이 전해졌다. 곽 감독은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깊은 반성과 자숙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는 단순한 원망을 넘어 한 영화인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진실을 담아내려 한 제작진의 노력
'소방관'은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실제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를 위해 헌신했던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고자 했다. 곽 감독은 "처음에는 연출을 맡기 꺼려했다"면서도 "소방관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뭔가 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결국 연출을 맡게 됐다"고 고백했다.
제작진의 진정성은 촬영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배우들은 실제 소방 교육을 이수했고, 한여름 불이 붙은 세트장에서 25kg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한 채 촬영에 임했다. 신입 소방관 역의 주원은 "세트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너무 무섭고 뜨거웠다"며 "소방관들은 매일 이런 화마와 맞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용기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주연 배우의 부재와 영화의 운명
곽도원의 음주운전 사건은 영화에 큰 타격을 주었다. 주인공 진섭 역을 맡은 그의 불참으로 영화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곽 감독은 분량 편집에 대해 "이야기 전개상 곽도원 배우의 분량을 크게 들어내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며 "4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OTT나 숏폼 리듬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요즘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며 타이트하게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곽 감독은 한 소방 관계자로부터 받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감독님, 우리 소방관들도 한 명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팀이 같이 들어가서 해내는 거고, 다른 배우들도 있으니 힘내세요'라는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날 제작보고회에는 주원, 유재명, 이준혁, 이유영 등 주요 출연진이 참석해 힘을 보탰다. 구급대원 역의 이유영은 "홍제동 화재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며 사명감을 드러냈고, 이준혁은 화상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불이 붙는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
'소방관'은 단순한 재난 영화를 넘어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인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부소방서 신입 소방관 철웅(주원)부터 구조대장 인기(유재명), 구급대원 서희(이유영), 소방관들의 가족까지, 그들의 일상과 희생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영화계 관계자는 "한 배우의 문제로 영화 전체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안타깝지만, 오히려 이 시간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진정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2월 4일 개봉을 앞둔 '소방관'은 이제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곽 감독은 "우리 모두의 진심이 닿길 바랄 뿐"이라며 "우리 팀을 믿고 용기 내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기다림과 우려, 그리고 희망이 이제 관객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